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래.
모르고 봐도 딱 그래 보여.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만큼 여성 혐오적인 표현이 많지만
감안하고 읽었지 뭐.(근데 내가 왜 그것까지 이해해줘야 해 시발)
제목에서부터 느낌 오잖아.
인간의 고뇌와 고통과 청춘의 방황 어쩌고 스타일.
아니나 다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하는 작가래.
상마초일남 스타일이란 얘기지.
멋대로 ㅈ대로 살아놓고 철학쟁이인 척하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잖아.
근데 다자이 오사무는 상남자답게 자살로 마무리함.
그 점은 높이 살만해.

어떻게 신뢰가 죄겠어.
신뢰를 깨는 것이 죄이지.
신뢰가 개박살나본 사람은 알지.
누가 죄인인지.
근데 그 죄인의 인생은 박살 안 남.
내 인생은 박살남.

죽고 싶다는 소리 입에 달고 사는 누구랑 참 닮았네.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이것도 맞음.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치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다. 맞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
진짜 개또라이네 이거.
어떻게 이런 문장을 창조해 냈을까.
천재여.

혐오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면서도 나는 혐오가 좋아.
싫음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게 좋아.
험악한 말을 내뱉는 타락하고 조악한 내 모습이 비참하고 좋아.
인간이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고, 살아 있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다.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한 문장이네.
그래 우리는 추락하는 존재야.
비상은 없어 추락만 있을 뿐.
모두가 그렇게 추락의 길 위에 서 있다.
누가 누가 더 잘 추락하나 대결하는 중.

단 한 번도 유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는 예수님을 배신한 배반자. 못된 사람. 배신의 아이콘. 그게 전부다.
실제로 유다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렇게 소설로 보니 존잼이다 이거야.
마음이 하루에도 오르락내리락 갈팡질팡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꼴이 나 같음.
충성을 맹세했다가, 또 싫었다가, 서운했다가, 마음을 바로 잡았다가, 화도 났다가, 또 반복.
지랄 맞은 인간 군상의 대표적인 유형이 아닐 수 없다.존나 나 같음.시발.
다자이 오사무 존나 별로고 존나 싫거든?
근데 내 안의 자기혐오와 우울과 불안과 고독과 센치함과 폭력성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돼서 그건 좀 좋네.
어떻게 사람이 5번이나 자살 시도를 해.
보통 사람은 못할 짓을 그는 해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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