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면 응당📚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이소호) :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 밖에는

1해라절해라 2025. 6. 18. 00:30

나는 시집을 잘 읽지 않는다.
시를 잘 읽지 않는다는 소리다.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시를 접하는 건 지하철 기다릴 때 스크린 도어에 있는 시를 읽어보는 정도.
그마저도 지하철 탑승과 동시에 까먹는다.
 
왜냐.
시를 읽는다는 건, 우선 글자를 읽고 몸으로 느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온갖 해석을 추론하며 난리법석을 떠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비유나 은유적인 표현이 나와도 직독직해 해버려서, 주인공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한 적도 많다.
'.....?? 뭔 소리야,,,,(앞장으로 넘어가서 뒤적뒤적)'
반복.
그래서 나에게 시를 읽는 건 약간 고문이다.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고 싶다면 추라이 할만함)

 
그런 와중에 소중한 친구에게서 시집을 선물 받았다.
감사합니다.
친구는 문예창작학과였다가 국제관계학부로 전과한 사람이다. (기개가 웅장함)
그런 친구가 직접 골라준 시집이니까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표지

책은 두껍지 않았다.
천천히 읽어도 40분이면 완독 가능.
제목에서부터 이미 다크한 기운이 느껴져.
그리고 표지 디자인이 매우 beautiful & grotesque
 
 
이 책은 마치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새로운 형식의 시가 많아서 띠용스러울 때도 있지만 읽는 재미도 있다.
(쉼표 많음, 단순 나열된 문장, 그림과의 융합, 글자 겹쳐쓰기 등)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p.28, 29

읽으면서 너무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합의된 상황인 것 같은데 왜 역겹고 더럽고 또 무서울까.
'예술'이라는 형식을 빙자한 '폭력'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반박 안 받음)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p.34,35

각주를 보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사진.
이걸 보고 뭐가 문제점인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사람이랑 친구 안 함.
언제쯤이면 마음 놓고 쉬 쌀 수 있을까.
쉬도 불안해하며 싸야 하는 ㅈ같은 세상.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p.34,35

이 문구들은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나, 너, 내 가족, 내 친구 등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문구들이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문구들인데?'라고 생각한다면 니가 이 세계의 제1 권력자 즉, 쌉기득권층이란 소리임.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p.46

정말 기깔난 수식 표현이다.
공식 하나로 모든 대한민국 범죄문화 설명 완료.
부끄럽고 죄스럽다.
이소호선생님은 천재가 아닐까.
 

이소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p.122, 123

각주에 달린 문장에는 발언자와 연도가 적혀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 가는데 속에서 천불이 난다 이거야....
내가 들어봤던 말들도 많이 있다.
저런 차별과 폭력의 언어들을 뒤집어쓴 채 이 날 이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끝끝내 살아서 이렇게 위로가 되는 시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존재를 지우고,
내 가치를 깎아내리고,
나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이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요.
(나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