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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천명관) : 어렵고 불편하고 슬픈 여성 수난사

1해라절해라 2025. 2. 25. 14:12

천명관 <고래> 책 표지

부모님 집에 갔다가 아빠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
읽기 쉽다고 아빠가 추천해 줬다.
책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다. 
읽다 보니 몰입이 잘 되어서 절반 정도를 읽고, 나머지는 부여에 돌아온 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노파, 애꾸, 금복, 춘희 등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은 모두 다 고통이 가득했다.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인간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20세기 여성 수난사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이거예요...

 

천명관 <고래> 구성 목차

소설은 1,2,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소설의 문체도 낯설고, 등장인물 관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서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청소년기에 배웠던 1930-40년대 한국소설의 문체와 일정 부분 닮아있다.
예) 독자들이여, 기다려보시라.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성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부분도 불편하긴 했는데, 2014년에 출판된 소설이니 감안하고 읽었다.
누군가는 여성의 주체적인 성적 가치관이라 생각하겠지만, 서술된 문장은 철저히 타자화, 대상화되어있는 건 맞다.
그런데 또 몰입력은 있다.
마초한국남성이 인간이란 무엇일까 고뇌하며 창작한 느낌.
약간... 한국판 무라카미 하루키 느낌이랄까.

 

천명관 <고래> 내용 中

2부의 주된 내용은 금복의 삶이다.
금복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여성 사업가가 된다.
남다른 배포와 추진력을 갖춘 인재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큰 일하는데 꼭 훼방을 놓는 것들이 있다.
당장 겟아웃.
 

천명관 <고래> p.429 내용 中

3부에서는 춘희의 인생이 그려진다.
춘희는 좁디좁은 징벌방에서 오래전에 죽은 코끼리 '점보'를 떠올린다.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춘희는 환상 속의 점보와 대화를 나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다.
점보만이 춘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사랑을 부어준다.
춘희는 그렇게 생명을 이어간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빙봉'이 떠올라서 오열하게 된다.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행복했던 기억.
그 기억으로 지옥 같은 이 현실을 버텨내나 보다.
 

천명관 <고래> p.533 내용 中

이 소설의 에필로그 마지막 장.
춘희는 아무도 없는 벽돌 공장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다.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춘희는 점보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떠난다.
사람은 죽을 때 그동안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이런 느낌일까.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일평생을 고난 속에서만 살다가 결국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너무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해서 광광 우럭다....ㅠ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작가가 원망스러웠다.
 
춘희의 삶 가운데서 그녀에게 행복과 기쁨을 준 것은 공장 부지의 개망초 꽃, 코끼리 점보, 정교하게 찍어낸 벽돌 등 모두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일지도.
비뚤어진 야만성과 잔인함을 발현하며 이토록 폭력적인 존재는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천국에서는
노파도, 금복도, 애꾸도, 춘희도, 춘희의 아이도, 코끼리 점보도
모두가 아프지 않고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끝으로, 20세기를 치열하게 살아온 여성 선배들에게 깊은 위로와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