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서 말하는 '한 스푼의 시간'이란,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세제 한 스푼을 풀었을 때 그 세제가 녹는 시간이다.
은결(로봇)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한 행위가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은결(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임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아님 감정 그 너머의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은결(로봇)이에게 물어봐야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 뭐.


내가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몰입이 잘 되고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주제는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와 연관된 서술이 나올 때마다 '와 이건 명언이다.' 하면서 머릿속에 저장한다.
지긋지긋한데 끊을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
ㅅㅂ,,
그렇게 물에 젖은 휴지조각들처럼 풀리고 젖고 잘게 찢어져서
모두 다 소멸해 버리면 편안해질까.


이 책에선 유독 '가족'에 대해 표현하는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들의 숨 막히는 인생살이가 다양하게 장면으로 서술되어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난, 서로를 향한 비난 등등.
세탁소 사장님(주인공)과 은결(로봇)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도 아니지만,
삶 전반에 걸쳐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같이 살아간다.
가족은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가족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2025년인 현재는 위와 같은 흐름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존중받고 있지는 못하다.
이 책은 2016년도에 출판되었으니 10년쯤 앞서나간 셈이다.

그렇게 입을 닫게 되....(밈)
숨만 쉬면서 살아도 비용이 드는데,
거기에 입을 열어 내 의견을 말하고,
다른 이는 내 입술에서 나간 소리 언어를 들으며 나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러면 또 품이 들고...
돈이 들고...
체력이 소모되고... 어쩌고...
그냥 점점 삶이 무거워져.
내 어깨에 1톤짜리 닻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그냥 그 닻을 내려서 심해로 가라앉고만 싶다.

작은 자극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싫다.
큰 소리, 높은 소리, 반말, 화내는 소리, 빻은 소리 등등
나는 그저 귀를 닫은 채 살고 싶고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좋은 말, 부드러운 말만
그리고 되도록 짧게 말해줬으면 해.
그저 외부 자극을 최소화하며 버텨내는 수밖에.(이렇게 또 사회성 재기,,,,)
로봇인 은결은 이런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문득 궁금해진다.

타인과의 경계.
우리 사회에서 꼭 지켰으면 하는 바람.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타인의 경계를 넘고 심지어는 허물어버리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오지랖 부리면서 잔소리를 하지 말아라~이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봇도 당연히 수명이 있다.
영원히 작동되는 기계는 없으니까.
이 로봇이 언제 작동이 멈추는지, 업그레이드나 수리는 되는지, 앞으로 거처는 어찌 되는지, 세주는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난 이게 진정한 존중인 것 같아.

빨랫감을 넣는다.
물을 투입한다.
세제가 물에 녹는다.
뒤섞이며 깨끗하게 세탁이 된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하나라도 삐끗하게 되면 세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삶이 지랄 맞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들을 해내야 하는 거다.
그래야 인간세상도 굴러간다.
만약 세제의 양이 너무 적거나,
빨랫감의 양이 너무 많거나,
옷감에 따른 적절한 세제를 사용하지 못했거나,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세탁은 망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무리하는 세탁기는 수명이 다하기 마련이다.
어차피 죽을 인생.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즐겁게 건강하게 세탁 돌리자.

책을 읽는 내내 깨끗한 세제향과 세탁소의 오일냄새가 함께 뒤섞여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의 얼룩도, 세탁기에 넣고 돌려서~~~.. 깨끗허게. 되돌리,고 싶다^^ 이말이.야~,,
세탁소에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삶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사장님, 은결이(로봇), 세주, 세주엄마, 시호, 준교 등 모두 우리 주변의 이웃이지 뭐.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할 수 있는 로봇과 휴머니즘이 결합된 소설이라 볼 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철학적이어서
재밌게 읽었다네요.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이 죽는 날까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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